Unit 1. Darwinism Must Die so that evolution may live
"You care for nothing but shooting, dogs and rat-catching," Robert Darwin told his son, "and you will be a disgrace to yourself and all your family." Yet the feckless boy is everywhere. Charles Darwin gets so much credit, we can't distinguish evolution from him. Equating evolution with Charles Darwin ignores 150 years of discoveries, including most of what scientists understand about evolution. Such as: Gregor Mendel's patterns of heredity (which gave Darwin's idea of natural selection a mechanism-genetics-by which it could work); the discovery of DNA (which gave genetics a mechanism and lets us see evolutionary lineages); developmental biology (which gives DNA a mechanism); studies documenting evolution in nature (which converted the hypothetical to observable fact); evolution's role in medicine and disease (bringing immediate relevance to the topic); and more. By propounding "Darwinism", even scientists and science writers perpetuate an impression that evolution is about one man, one book, one "theory". The ninth-century Buddhist master Lin Chi said, "If you meet the Buddha on the road, kill him." The point is that making a master teacher into a sacred fetish misses the essence of his teaching. So let us now kill Darwin.
"너는 사냥과 개, 쥐 잡는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로버트 다윈은 그의 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너는 너 자신과 가족들의 수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무책임한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찰스 다윈은 크게 인정받는다. 그 없이 우리는 진화를 구별할 수 없다. 진화와 찰스 다윈을 동일시하는 것은 많은 과학자들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여 150년간의 발견들을 무시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멘델의 유전 법칙 (다윈에게 자연선택의 이론이 작동할 수 있는 유전학이라는 메카니즘을 부여하는), DNA의 발견(유전학의 구조를 제공하고 우리가 진화 계열을 알 수 있게 했던), 발생 생물학 (DNA에 구조를 제공한), 자연 내의 진화를 뒷받침한 연구들 (가상을 관찰 가능한 사실로 전환시킨), 의학과 질환에서의 진화의 역할 (이 화제에 갑작스럽게 관련성을 가져오는), 등이 있다. "다윈설"을 제의함으로써 과학자들과 과학 작가들은 심지어 진화는 오직 한 사람, 한 책, 한 "이론"에 대한 것이라는 인상을 영구화했다. 19세기 불교의 대가 임제 선사가 말하길, "길을 가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고 했다. 이 말의 요점은 스승을 신성한 숭배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가르침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다윈을 죽이도록 하자.
That all life is related by common ancestry, and that populations change form over time, are the broad strokes and fine brushwork of evolution. But Darwin was late to the party. His grandfather, and others, believed new species evolved. Farmers and fanciers continually created new plant and animal varieties by selecting who survived to breed, thus handing Charles Darwin an idea. All Darwin perceived was that selection must work in nature, too. In 1859, Darwin's perception and evidence became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Few realize he published 8 books before and 10 books after "Origin." He wrote seminal books on orchids, insects, barnacles and corals. He figured out how atolls form, and why they're tropical. Credit Darwin's towering genius. No mind ran so freely, so widely or so freshly over the hills and vales of existence. But there's a limit to how much credit is reasonable. Parking evolution with Charles Darwin overlooks the limits of his time and all subsequent progress.
생물은 공동 조상과 관련되어있다는 것, 인구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형태를 달리한다는 것은 진화론에 한 획을 그은 생각이다.(광범위한 노력과 훌륭한 걸작이 되었다) 그러나 다윈은 그런 생각의 추종자들에 미치지 못했다. 그의 조부와 다른 이들은 새로운 종(種)이 진화된다고 믿었다. 농부와 사육사들은 누가 살아남아 키울지를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식물과 동물의 변종을 계속해서 만들어냈고, 그래서 찰스 다윈에게 아이디어를 주었다. 다윈이 인식한 모든 것들은 자연계에서도 선택이 또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1859년도에 다윈의 통찰과 증거는 "종의 기원"이 되었다. 그가 "종의 기원"이전에 8권을, 이후에 10 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그는 난초, 곤충, 따개비와 산호에 관한 독창적인 책을 저술했다. 그는 산호섬이 어떻게 형성되며 왜 그들이 열대에 있는지를 밝혔다. 다윈의 높은 천재성을 믿어라. 어떤 정신도 존재의 언덕과 계곡을 넘어 그렇게 자유롭게, 광활하게, 신선하게 뛰놀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명성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 진화를 다윈과 함께 두는 것은 그의 시대의 한계와 그 이후의 과정을 간과하는 것이다.
Science was primitive in Darwin's day. Ships had no engines. Not until 1842, six years after Darwin's Beagle voyage, did Richard Owen coin the term "dinosaur." Darwin was an adult before scientists began debating whether germs caused disease and whether physicians should clean their instruments. In 1850s London, John Snow fought cholera unaware that bacteria caused it. Not until 1857 did Johann Carl Fuhlrott and Hermann Schaaffhausen announce that unusual bones from the Neander Valley in Germanu were perhaps remains of a very old human race. In 1860 Louis Pasteur performed experiments that eventually disproved "spontaneous generation," the idea that life continually arose from nonliving things.
과학은 다윈의 시대에서 초기 단계였다. 선박은 엔진이 없었다. 다윈의 비글이 항해를 한지 6년 후인 1842년이 되어서야 richard owen 은 공룡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다윈은 과학자들이 세균이 질병을 일으키는지, 의사들이 그들의 수술기구를 세척해야 하는지 어떤지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어른이었다. 1850년대의 런던에서 John snow는 박테리아가 그것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콜레라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1857년이 되어서야 Johann Carl Fuhlrott와 Hermann schaaffhausen 은 독일 neander 계곡에서 발견된 특수한 뼈가 아마도 매우 오래된 인종의 잔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1860년 Louis pasteur는 무생물체로부터 생명체가 계속해서 발생한다는 "자연발생설"의 이념을 반증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Science has marched on. But evolution can seem uniquely stuck on its founder. We don't call astrononmy Copernicism, nor gravity Newtonism. "Darwinism" implies an ideology adhering to one man's dictates, like Marxism. And "isms" (capitalism, Catholicism, racism) are not science. "Darwinism" implies that biological scientists "believe in" Darwin's "theory". It's as if, since 1860, scientists have just ditto-headed Darwin rather than challenging and testing his ideas, or adding vast new knowledge. Using phrases like "Darwinian selection" or "Darwinian evolution" implies there must be another kind of evolution at work, a process that can be described with another adjective. For instance, "Newtonian physics" distinguishes the mechanical physics Newton explored from subatomic quantum physics. So "Darwinian evolution" raises a question: What's the other evolution? Into the breach: intelligent design. I am not quite saying Darwinism gave rise to creationism, though the "isms" imply equivalence. But the term "Darwinian" built a stage upon which "intelligent" could share the spotlight.
과학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진화는 독특하게도 그것의 창시자에게만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천문학을 코페르니쿠스주의로 또는 중력을 뉴턴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윈설"은, 마치 마르크스주의처럼 한 사람의 규칙을 고수하는 이데올로기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주의"는 (자본주의, 가톨릭시즘, 인종주의) 들은 과학이 아니다. "다윈주의"는 생물학 과학자들이 다윈의 "학설"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1860년대부터 과학자들이 다윈의 학설에 도전하고 그의 이념을 검증하거나 새로운 지식을 더하기 보다는 다윈과 같은 길을 가는 것(같은 머리를 가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윈의 선택"이나 "다윈의 진화"와 같은 어구를 사용하는 것은 작용하는 다른 종류의 진화,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과정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턴적 물리학"은 뉴턴이 탐구했던 기계물리학을 아원자적 양자 물리학과 구분한다. 그러므로 "다윈의 진화"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 대역을 맡을 것은 무엇인가? 지적생각이다. 나는 "주의"들이 등가성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다윈주의가 창조론을 생겨나게 했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다윈적"이라는 표현은 "지적인"이라는 말이 스포트라이트를 공유할 수 있는 무대를 세웠다.
Charles Darwin didn't invent a belief system. He had an idea, not an ideology. The idea spawned a discipline, not disciples. He spent 20-plus years amassing and assessing the evidence and implications of similar, yet differing, creatures separated in time (fossils) or in space (islands). That's science. That's why Darwin must go. Almost everything we understand about evolution came after Darwin, not from him. He knew nothing of heredity or genetics, both crucial to evolution. Evolution wasn't even Darwin's idea. Darwin's grandfather Erasmus believed life evolved from a single ancestor. "Shall we conjecture that one and the same kind of living filaments is and has been the cause of all organic life?" he wrote in "Zoonomia" in 1794. He just couldn't figure out how.
찰스 다윈은 신앙 체계를 발명한 것이 아니다. 그는 생각을 가졌을 뿐 이데올로기를 가진 것이 아니다. 이 생각은 신봉자(제자)가 아니라 지식 과목(학문분야)을 낳았다. 그는 20년 이상을 비슷하지만 다른 시간에(화석) 또는 장소에(섬)에 분포되어 있는 생물들의 증거와 의미를 모으고 평가하는 데 매달렸다. 그것이 과학이다. 그것이 다윈이 사라져야(물러나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진화에 대해 이해하는 것의 거의 모든 것은 다윈 이후에 등장한 것이지, 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진화에 있어 중요한 유전이나 유전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진화조차도 다윈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는 생물이 한가지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믿었다. "우리는 하나의, 동일한 필라멘트가 모든 유기 생물체의 원인이라고 추측해야 합니까?" 1974년 그는 "동물생리학(원제:주노미아 zoonomia )"에 이렇게 저술했다. 그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Charles Darwin was after the how. Thinking about farmer's selective breeding, considering the high mortality of seeds and wild animals, he surmised that natural conditions acted as a filter determining which individuals survivied to breed more individulas like themselves. He called this filter "natural selection." What Darwin had to say about evolution basically begins and ends right there. Darwin took the tiniest step beyond common knowledge. Yet because he perceived - correctly -a mechanism by which life diversifies, his insight packed sweeping power. But he wasn't alone. Darwin had been incubating his thesis for two decades when Alfred Russel Wallace wrote to him from Southeast Asia, independently outlining the same idea. Fearing a scoop, Darwin's colleagues arranged a public presentation crediting both men. It was an idea whose time had come, with or without Darwin.
찰스 다윈은 '방법' 이후였던 셈이다. 농부의 선택적 번식을 생각하고 종자와 야생 동물들의 높은 사망률을 고려하면서 그는 자연 환경이 마치 어떤 개체가 좀 더 그들과 같은 개체를 번식시키기 위해 살아남아야 할지 결정하는 필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추측했다. 그는 이 필터를 "자연 선택"이라고 불렀다. 다윈이 진화에 대해 언급해야 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그곳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다윈은 일반 상식을 넘어선 가장 작은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그가 생명이 변형하는 구조를 올바르게 인식했기 때문에 그의 통찰이 결정적인 힘을 포착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다윈은 Alfred Russel Wallace가 동남아시아에서 독립적으로 같은 생각의 윤곽을 잡아나가면서 그에게 편지를 썼을 때 20년 동안 그의 이론을 품고만 있었다. 특종을 두려워하며, (다윈에 맞서는 놀라운 공개적 발표를 두려워하며)다윈의 동료들은 둘을 지지하면서 공개 발표를 준비했다. 이것은 다윈이 있든 없든 나오게 될 생각이었다.
Darwin penned the magnum opus. Yet there were weaknesses. Individual variation underpinned the idea, but what created variants? Worse, people thought traits of both parents blended in the offspring, so wouldn't a successful trait be diluted out of existence in a few generations? Because Darwin and colleagues were ignorant of genes and the mechanics of inheritance, they couldn't fully understand evolution. Gregor Mendel, an Austrian monk, discovered that in peaplants inheritance of individual traits followed patterns. Superiors burned his papers posthumously in 1884. Not until Mendel's rediscovered "genetics" met Darwin's natural selection in the "modern synthesis" of the 1920s did science take a giant step toward understandign evolutionary mechanics. Rosalind Franklin, James Watson and Francis Crick bestowed the next leap: DNA, the structure and mechanism of variation and inheritance.
다윈은 대단한 작품을 썼다. 그러나 약점도 있다. 개체 변이는 그의 생각을 지지했지만 변종은 무엇이 만드는가?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은 양친의 특성이 자식에게 섞이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좋은 특성이 몇 세대를 거치면 존재밖에서 희석되어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다윈과 그의 동료들은 유전자와 유전의 구조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진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호주의 수도승인 Gregor Mendel은 콩나무에서 개인 특성의 유전이 일정 형식을 따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도원장들은 1884년에 그의 사후에 논문들을 불태웠다. 멘델의 재발견된 “유전학”이 1920년대의 “근대적종합”에서 다윈의 자연선택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과학은 진화론적 체계를 이해하는 쪽으로 거대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Rosalind Franklin, James Watson과 Francis Crick은 한 단계 도약시켰다. DNA, 바로 변종과 유전의 구조와 체계를 보여주는 연구이다.
Darwin's intellect, humility ("It is always advisable to perceive clearly our ignorance") and prescience astonish more as scientist clarify, in detail he never imagined, how much he got right. But our understanding of how life works since Darwin won't swim in the public pool of ideas until we kill the cult of Darwinism. Only when we fully acknowledge the subsequent century and a half of value added can we really appreciate both Darwin's genius and the fact that evolution is life's driving force, with or without Darwin.
다윈의 지적 능력, 겸손 ("우리의 무지를 명백히 인식하는 것은 항상 바람직하다") 그리고 예견(통찰)은 과학자들이 그가 상상할 수 없었던 만큼 상세히 얼마나 그가 옳았는지를 명백히 할 때 더욱 놀랍게 했다. 그러나 다윈 이후로 생명의 작용 방식에 대한 이해는 다윈주의의 숭배를 없앨 때까지는 대중들의 생각의 틀에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다음 세기와 덧붙여진 절반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할 때만 다윈이 있든 없든 다윈의 천재성과 진화가 생명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평가(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