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셀은 루마니아 시게트 태생으로 미국의 소설가 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 유대인의 파멸을 진지하면서도 격앙된 증언 형식으로 다룬 작품들을 썼습니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호로코스트, 즉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의 생존자로서의 경험과 함께 '왜 홀로코스트가 발생했는가', '그것이 인간 본성에 대해 폭로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윤리적 고뇌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개인적 관심사를 폭행,증오,억압에 대한 보편적 비난으로 발전시킨 능력이 인정되어 198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Unit 12. "The Perils of Indifference" By Elie Wiesel
Fifty-four years ago to the day, a young Jewish boy from a small town in the Carpathian Mountains woke up, not far from Goethe's beloved Weimar, in a place of eternal infamy called Buchenwald. He was finally free, but there was no joy in his heart. He thought there never would be again. Liberated a day earlier by American soldiers, he remembers their rage at what they saw. And even if he lives to be a very old man, he will always be grateful to them for that rage, and also for their compassion. Though he did not understand their language, their eyes told him what he needed to know-that they, too, would remember, and bear witness.
54년 전 그날, 괴테가 사랑한 바이마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겐발트라는 영원한 오명이 남은 곳, 카파디아 산 속의 작은 마을에서 한 어린 유대인 소년이 깨어났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유로워졌지만 그의 가슴 속에 즐거움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군인들에 의해 해방 된 하루 전, 그는 그들이 본 것에 대한 분노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비록 그는 늙어갈 지라도 항상 그 분노와 연민에 감사할 것입니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그가 알아야 했던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기억하고 증인이 될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And now, I stand before you, Mr. President - Commander-in-Chief of the army that freed me, and tens of thousands of others - and I am filled with a profound and abiding gratitude to the American people. "Gratitude" is a word that I cherish. Gratitude is what defines the humanity of the human being. And I am grateful to you, Mrs. clinton, for what you said, and for what you are doing for children in the world, for the homeless, for the victims of injustice, the victims of destiny and society. And I thank all of you for being here.
그리고 현재, 저는 저를 자유롭게 한 미군 총사령관이자, 수만명의 총사령관인 대통령각하 앞에 서 있습니다. 저는 미국인에 대한 깊고 변치 않는 감사한 마음에 차있습니다. "감사"는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단어입니다. 감사는 인간이 가진 인류애를 지칭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과 노숙자들, 부정의 피해자들과 운명과 사회의 희생자들에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모든 것에 대해 클린턴 부인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곳의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We are on the threshold of a new century, a new millennium. What will the legacy of this vanishing century be? How will it be remembered in the new millennium? Surely it will be judged, and judged severely, in both moral and metaphysical terms. These failures have cast a dark shadow over humanity: two World Wars, countless civil wars, the senseless chain of assassinations, bloodbaths in various parts of the world; the inhumanity in the gulag and the tragedy of Hiroshima. And, on a different level, of course, Auschwitz and Treblinka. So much violence; so much indifference.
저희는 새로운 한 세기, 새천년의 문턱에 서있습니다. 이러한 사라지는 한 세기의 유산은 무엇이겠습니까? 새천년에는 어떻게 기억되겠습니까? 도덕과 형이상학적 용어로 신랄하게 심판 받을 것입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 셀 수 없는 내전, 무의미한 일련의 암살 사건들, 세계 각지의 대학살, 강제 노동 수용소의 무자비와 히로시마의 비극 등 이러한 실패들은 인간성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다른 한 편에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린카가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폭력과 무관심입니다.
What is indifference? Etymologically, the word means "no difference." A strange and unnatural state in which the lines blur between light and darkness, dusk and dawn, crime and punishment, cruelty and compassion, good and evil. What are its courses and inescapable consequences? Is it a philosophy? Is there a philosophy of indifference conceivable? Can one possibly view indifference as a virtue? Is it necessary at times to practice it simply to keep one's sanity, live normally, enjoy a fine meal and a glass of wine, as the world around us experiences harrowing upheavlas?
무관심이란 무엇입니까? 어원학적으로 보면, 이 단어는 "다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빛과 어둠, 황혼과 여명, 범죄와 처벌, 잔인함과 연민,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낯설며 비정상적인 상태입니다. 그 과정과 필연적 결과는 무엇입니까? 철학입니까? 생각할 수 있는 무관심의 철학이 있습니까? 무관심을 미덕으로 볼 수 있습니까?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비참한 격동을 경험하고 있을 때 단순히 자신의 건강을 위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좋은 음식과 와인을 즐기기 위해 때때로 무관심해지는 것이 필요합니까?
Of course, indifference can be tempting-more than that, seductive. It is so much easier to look away from victims. It is so much easier to avoid such rude interruptions to our work, our dreams, our hopes. It is, after all, awkward, troublesome, to be involved in another person's pain and despair. Yet, for the person who is indifferent, his or her neighbor are of no consequence. And, therefore, their lives are meaningless. Their hidden or even visible anguish is of no interest. Indifference reduces the Other to an abstraction.
물론, 무관심은 구미가 당기는, 그보다 좀 더 유혹적인 것입니다. 희생자들에게서 눈길을 돌리는 것은 더욱 쉽습니다. 우리의 업적과, 꿈과 희망에 대한 무례한 방해물들을 피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결국, 타인의 고통과 절망에 관여하는 것은 어색하며 골치 아픈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무관심한 사람에게 그나 그녀의 이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무의미합니다. 그들의 숨겨진, 혹은 드러나는 고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관심은 타인을 추상적 개념으로 축소시킵니다.
Over there, behind the black gates of Auschwitz, the most tragic of all prisoners were the "Muselmanner," as they were called. Wrapped in their torn blankets, they would sit or lie on the ground, staring vacantly into space, unaware of who or where they were-strangers to their surroundings. They no longer felt pain, hunger, thirst. They feared nothing. They felt nothing. They were dead and did not know it.
아우슈비츠의 검은 문 뒤, 그곳에서 모든 수용자들에게 가장 비극적인 것은 그들의 말에 따르면 "회교도"이었습니다. 찢어진 모포를 두르고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주변에 이방인인 채로 공허하게 허공을 응시하며 앉거나 누워 있곤 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고통이나 허기, 갈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었고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Rooted in our tradition, some of us felt that to be abandoned by humanity then was not the ultimate. We felt that to be abandoned by God was worse than to be punished by Him. Better an unjust God than an indifferent one. For us to be ignored by God was a harsher punishment than to be a victim of His anger. Man can live far from God-not outside god. God is wherever we are. Even in suffering? Even in suffering.
전통에 뿌리박힌 우리들 중 몇몇은 인간에 의해 버림받는 것이 끝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신에게 처벌 받는 것보다 그에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끔찍하다고 여겼습니다. 공평하지 않은 신이 무관심한 것보다 낫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의 분노의 희생자가 되는 것보다 그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훨씬 가혹한 처벌입니다. 인간은 신에게서 떨어져서 살 수는 있지만 그의 밖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신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 존재합니다. 고통 속에도 존재 할까요? 심지어 고통 속에서도 존재합니다.
In a way, to be indifferent to that suffering is what makes the human being inhuman. Indifference, after all, is more dangerous than anger and hatred. Anger can at times be creative. One writes a great poem, a great symphony. One does something special for the sake of humanity because one is angry at the injustice that one witnesses. But indifference is never creative. Even hatred at times may elicit a response. You fight it. You denounce it. You disarm it.
이런 식으로, 고통에 무관심 해지는 것은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무관심은 분노나 증오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분노는 때때로 창조적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훌륭한 시나 교향곡을 썼습니다. 어떤 이는 목격한 부정에 분노하여 인류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절대로 창조적일 수 없습니다. 심지어 증오조차도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당신은 싸울 수도 있고, 비난할 수도 있고, 무력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Indifference elicits no response. Indifference is not a response. Indifference is not a beginning; it is an end. And, therefore, indifference is always the friend of the enemy, for it benefits the aggressor-never his victim, whose pain is magnified when he or she feels forgotten. The political prisoner in his cell, the hungry children, the homeless refugees-not to respond to their plight, not to relieve their solitude by offering them a spark of hope is to exile them from human memory. And in denying their humanity, we betray our own.
무관심은 아무런 반응도 이끌어내지 않습니다. 무관심은 반응이 아닙니다. 무관심은 시작이 아니라 끝입니다. 침략자에게 이익을 주며 잊혀졌다고 느끼고 고통이 배가 되는 희생자들에게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무관심은 항상 적군의 편입니다. 자신의 곤경에 반응하지 않고, 약간의 희망을 주어 고독을 덜지 않는 옥중의 정치범, 굶주린 어린이, 집을 잃은 난민들은 인간의 기억에서 그들을 추방시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성을 부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배반합니다.
Indifference, then, is not only a sin, it is a punishment. And this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lessons of this outgoing century's wide-ranging experiments in good and evil. In the place that I come from, society was composed of three simple categories: the killers, the victims, and the bystanders. During the darkest of times, inside the ghettoes and death camps-and I'm glad that Mrs. Clinton mentioned that we are now commemorating that event, that period, that we are now in the Days of Remembrance-but then, we felt abandoned, forgotten. All of us did.
그러면 무관심은 죄일 뿐 아니라 처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물어가는 세기가 겪은 선과 악의 광범위한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제가 나온 그 장소에서, 사회는 3가지의 단순한 범주로 구성되었습니다. 살인자, 희생자, 방관자. Clinton 여사께서 우리는 현재 그 사건과, 시기를 기리며 추도의 나날 속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만, 가장 어두운 시기에 게토와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그 때는 저희가 버려지고, 잊혔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And our only miserable consolation was that we believed that Auschwitz and Treblinka were closely guarded secrets; that the leaders of the free world did not know what was going on behind those black gates and barbed wire; that they had no knowledge of the war against the Jews that Hitler's armies and their accomplices waged as part of the war against the Allies. If they knew, we thought, surely those leaders would have moved heaven and earth to intervene. They would have spoken out with great outrage and conviction. They would have bombed the railways leading to Birkenau, just the railways, just once.
그리고 우리의 비참한 위안은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린카는 철저히 비밀이 지켜지고 있으며 자유세계의 지도자들은 그 검은 문과 가시철사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히틀러의 군대와 그 협력자들이 연합군에 대항하는 전쟁의 일환으로서 유대인에 대한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알았다면, 당연히 그러한 지도자들은 개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폭행에 대한 분개와 확신을 가지고 소리내어 말했을 것이다. 비켄하우로 향하는 철도를 단지 그 철로만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공습했을 것이다.
And now we knew, we learned, we discovered that the Pentagon knew, the State Department knew. And the illustrious occupant of the White House then, who was a great leader-and I say it with some anguish and pain, because, today is exactly 54 years marking his death-Franklin Delano Roosevelt died on April the 12th, 1945. So he is very much present to me and to us. No doubt, he was a great leader. He mobilized the American people and the world, going into battle, bringing hundreds and thousands of valiant and brave soldiers in America to fight fascism, to fight dictatorship, to fight Hitler. And so many of the young people fell in battle. And, nevertheless, his image in Jewish history-I must say it-his image in Jewish history is flawed.
그리고 지금 우리는 국방부에서 알고 있었으며 국무부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백악관의 저명한 주인, 위대한 지도자인 Franklin Delano Roosevelt 대통령은 1945년 4월 12일에 서거하시고 올해가 정확히 54주기가 되는 해이므로 말씀드리기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저와 우리들은 그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파시즘과, 독재와, 히틀러와 싸우기 위해 미국 국민들과 세계를 전쟁터로 동원하여 수백 수천의 용감한 군인들을 미국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은, 유대인의 역사에서 그의 인상에는 흠이 있습니다.
The depressing tale of the St. Louis is a case in point. Sixty years ago, its human cargo-nearly 1,000 Jews-was turned back to Nazi Germany. And that happened after the Kristallnacht, after the first state sponsored pogrom, with hundreds of Jewish shops destroyed, synagogues burned, thousands of people put in concentration camps. And that ship, which was already in the shores of the United States, was sent back. I don't understand. Roosevelt was a good man, with a heart. He understood those who needed help. Why didn't he allow these refugees to disembark? A thousand people-in America, the great country, the greatest democracy, the most generous of all new nations in modern history. What happened? I don't understand. Why the indifference, on the highest level, to the suffering of the victims?
세인트 루이스 에서의 울적한 이야기가 그 적절한 예입니다. 60년 전, 거의 1000명 정도의 유대인을 태운 여객선이 나치 독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수많은 유대인 상점이 파괴되고, 유대교 회당이 불타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에 수용된 크리스탈낙트(유리의 밤) 이후에 벌어졌습니다. 그 선박은 이미 미국 연안에 있었지만, 되돌려 보내졌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인정 있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이해했습니다. 왜 그들의 상륙을 허가하지 않았을까요? 고작 천명인데요. 위대한 나라, 민주주의의, 근대 역사상 모든 신생국 중 가장 관대한 미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가장 중요한 때 희생자들의 고통에 무관심 했습니까?
But then, there were human beings who were sensitive to our tragedy. Those non-Jews, those Christians, that we call the "Righteous Gentiles," whose selfless acts of heroism saved the honor of their faith. Why were they so few? Why was there a greater effort to save SS murderers after the war than to save their victims during the war? Why did some of America's largest corporations continue to do business with Hitler's Germany until 1942? It has been suggested, and it was documented, that the Wehrmacht could not have conducted its invasion of France without oil obtained from American sources. How is one to explain their indifference?
그러나 그때, 우리의 비극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의로운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기독교인들의 자신을 돌보지 않는 용감한 행동은 그들 신앙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왜 그토록 소수였습니까? 전쟁 중의 희생자를 구하려는 것보다 전쟁 후의 SS요원(나치친위대)를 살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은 어째서입니까? 왜 미국의 거대 기업들은 1942년까지 히틀러 치하의 독일과 사업을 계속했습니까? 그것은 미국 공급원으로부터 원유를 획득하지 못했으면 독일 연방군의 프랑스 침입은 실행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제시하며 입증되었습니다. 그들의 무관심을 누가 설명할 수 있습니까?
And yet, my friends, good things have also happened in this traumatic century: the defeat of Nazism, the collapse of communism, the rebirth of Israel on its ancestral soil, the demise of apartheid, Israel's peace treaty with Egypt, the peace accord in Ireland. And let us remember the meeting, filled with drama and emotion, between Rabin and Arafat that you, Mr. President, convened in this very place. Iwas here and I will never forget it.
그러나 친애하는 여러분, 이런 끔찍한 시기에도 좋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나치즘의 몰락, 공산주의의 붕괴, 조상의 토양에 기초한 이스라엘의 재건, 인종차별정책의 소멸,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 조약, 아일랜드의 평화 협정 등입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주선하신 바로 이 장소에서의 라빈과 아라파트의 극적인 만남을 기억합시다. 저는 이곳에 있었으며 절대로 그 일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And then, of course, the joint decision of the United States and NATO to intervene in Kosovo and save those victims, those refugees, those who were uprooted by a man, whom I believe that because of his crimes, should be charged with crimes against humanity. But this time, the world was not silent. This time, we do respond. This time, we intervene.
물론, 코소보 개입과 희생자, 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미국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공동결정은 인간성에 어긋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계가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대응할 것입니다. 저희는 개입할 것입니다.
Does it mean that we have learned from the past? Does it mean that society has changed? Has the human being become less indifferent and more human? Have we really learned from our experiences? Are we less insensitive to the plight of victims of ethnic cleansing and other forms of injustices in places near and far? Is today's justified intervention in Kosovo, led by you, Mr. President, a lasting warning that never again will the deportation, the terrorization of children and their parents, be allowed anywhere in the world? Will it discourage other dictators in other lands to do the same?
그것이 우리가 과거로부터 배웠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인간이 덜 무관심해 지고 좀 더 인간적으로 변했습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경험을 통해 배운 것입니까? 인종 청소의 희생자들이 겪는 곤경과 도처의 부정에 대해서도 덜 무감각합니까? 대통령께서 이끄시는 오늘날 정당화 된 코소보 개임은 어린 아이와 그들의 부모들의 국외 추방과 탄압은 다시는 세계 어디에서도 허락되지 않을 거라는 지속적인 경고입니까?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다른 독재자들을 단념시킵니까?
What about the children? Oh, we see them on television, we read about them in the papers, and we do so with a broken heart. Their fate is always the most tragic, inevitably. When adults wage war, children perish. We see their faces, their eyes. Do we hear their pleas? Do we feel their pain, their agony? Evevy minute one of them dies of disease, violence, famine.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은 TV나 신문에서 그들을 보며 마음 아파합니다. 그들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가장 비극적입니다. 어른들이 전쟁을 벌이면,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우리는 그들의 얼굴을, 눈을 봅니다. 그들의 애원을 듣고 있습니까? 그들의 고통, 괴로움을 느끼고 있습니까? 매순간 아이들은 질병, 폭력, 기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Some of them-so many of them-could be saved. And so, once again, I think of the young Jewish boy from the Carpathian Mountains. He has accompanied the old man I have become throughout these years of quest and struggle. And together we walk towards the new millennium, carried by profound fear and extraordinary hope.
몇몇 아이들은, 아주 많은 아이들은 구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저는 카파디안 산맥의 작은 유대인 소년을 생각합니다. 그는 탐구와 투쟁의 긴 세월을 보낸 노인과 함께 합니다.(그는 긴 여정과 고통의 나날을 노인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깊은 두려움과 큰 희망이 이끄는(희망을 안고) 새천년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