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 14. "Faith, Truth and Tolerance in America" By Edward M. Kennedy
"미국의 믿음, 진실 그리고 관용 "
I have come here to discuss my beliefs about faith and country, tolerance and truth in America. I know we begin with certain disagreements; I strongly suspect that at the end of the evening some of our disagreements will remain. But I also hope that tonight and in the months and years ahead, we will always respect the right of others to differ, that we will never lose sight of our own fallibility, that we will view ourselves with a sense of perspective and a sense of humor. After all, in the New Testament, even the Disciples had to be taught to look first to the beam in their own eyes, and only then to the mote in their neighbor's eyes.
저는 미국에서의 신념과 나라, 관용과 진실에 대한 나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의견 차이로 시작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의견 차이는 남아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밤과 몇 달 몇 해가 지난 후에, 우리가 다를 수 있는 다른사람들의 권리를 언제나 존중하고,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견해를 잃지 않으며, 균형감각과 유머감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신약성서에서 사도들 조차도 그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고 난후 그들 이웃의 눈에 있는 티끌을 보라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I am mindful of that counsel. I am an American and a Catholic; I love my country and treasure my faith. But I do not assume that my conception of patriotism or policy is invariably correct, or that my convictions about religion should command any greater respect than any other faith in this pluralistic society. I believe there surely is such a thing as truth, but who among us can claim a monopoly on it?
저는 그 조언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인이며 가톨릭 신자입니다. 저는 저의 국가를 사랑하고 저의 신앙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애국심이나 정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거나 종교에 대한 나의 확신이 이러한 다원적 사회에서 다른 어떤 신앙보다 훨씬 존중받을 값어치가 있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저는 분명히 진실로서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만, 우리 중 누가 그것의 독차지를 주장하겠습니까? (그것에 대한 독점을 주장하겠습니까?)
There are those who do, and their own words testify to their intolerance. For example, because the Moral Majority has worked with members of different denominations, one fundamentalist group has denounced Dr. Falwell for hastening the ecumenical church and for "yoking together with roman Catholics, Mormons, and others." I am relieved that Dr. Falwell does not regard that as a sin, and on this issue, he himself has become the target of narrow prejudice. When people agree on public policy, they ought to be able to work together, even while they worship in diverse ways. For truly we are all yoked together as Americans, and the yoke is the happy one of individual freedom and mutual respect.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의 말은 그들의 옹졸함을 증명합니다. 예를 들어, 도덕적 다수파가 여러 종파들의 일원들과 함께 일해 왔기 때문에, 원리주의자들은 세계 교회를 재촉하고 "로마 가톨릭과 모르몬교, 다른 종교들을 얽어맸다"며 Falwell 박사를 맹렬히 비난해 왔습니다. 저는 falwell 박사가 그것을 죄악으로 여기지 않음에 안도하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 그 자신은 편협한 편견의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공공 정책에 동의하면,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예배를 한다고 할지라도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로 우리는 미국인으로서 얽매여 있으며 이 굴레는 개인의 자유와 상호 존중이라는 행복한 것입니다.
But in saying that, we cannot and should not turn aside from a deeper and more pressing question-which is whether and how religion should influence government. A generation ago, a presidential candidate had to prove his independence of undue religious influence in public life, and he had to do so partly at the insistence of evangelical Protestants. John Kennedy said at that time : "I believe in an America where there is no religious bloc voting of any kind." Only twenty years later, another candidate was appealing to a[n] evangelical meeting as a religious bloc. Ronald Reagan said to 15 thousand evangelicals at the Roundtable in Dalls: "I know that you can't endorse me. I want you to know I endorse you and what you are doing."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종교가 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과 그 여부라는 더욱 깊으며 긴급한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세대 전, 어떤 대선 주자는 공적 생활에 있어 과도한 종교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증명해야 했으며 부분적으로는 복음주의 개신교도의 강요 탓도 있었습니다. John Kennedy 는 그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떠한 종교적 연합도 없는 미국을 믿고 있습니다." 고작 20년 후에, 또 다른 대선 후보가 종교 연합으로 복음주의 집회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Ronald Reagan은 Dallas에서 열린 원탁회의에서 15000명의 복음주의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를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께서 제가 여러분과 여러분들이 하시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To many Americans, that pledge was a sign and a symbol of a dangerous breakdown in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Yet this principle, as vital as it is, is not a simplistic and rigid command.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cannot mean an absolute separation between moral principles and political power. The challenge today is to recall the origin of the principle, to define its purpose, and refine its application to the politics of the present.
많은 미국인들에게 이 서약은 교회와 정부의 분리에 있어서 위험한 붕괴의 신호이자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중요한 이 원칙은 단순하고 융통성 없는 명령이 아닙니다. 교회와 정부의 분리는 도의와 정치권력 간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과제는 원칙의 근원을 기억하고, 그 목적을 정의하기 위고, 현재의 정치에 좀 더 나은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The founders of our nation had long and bitter experience with the state, as both the agent and the adversary of particular religious views. In colonial Mary land, Catholics paid a double land tax, and in Pennsylvania they had to list their names on a public roll-an ominous precursor of the first Nazi laws against the Jews. And Jews in turn faced discrimination in all of the thirteen original colonies. Massachusetts exiled Roger Williams and his congregation for contending that civil government had no right to enforce the Ten Commandments. Virginia harassed Baptist teachers, and also established a religious test for public service, writing into the law that no "popish followers" could hold any office.
이 나라의 설립자들은 특별한 종교적인 견해들의 대리인과 반대자 모두로서 국가와 길고 괴로운 경험을 겪었습니다. 식민지였던 Mary Land에서 가톨릭교도는 토지세를 두 배로 지불했으며 펜실베이니아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불길한 법안의 원형이 된 공적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13개의 모든 식민지에서 차례로 차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Massachusetts 주에서는 시민 정부가 십계명을 강화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Roger williams와 그의 신도들을 추방했습니다. virginia주에서는 침례교도 선생을 괴롭혔으며, 법안에 "가톨릭교의 추종자들"은 누구도 재직할 수 없다고 기재하는 동시에 공무원이 되기 위한 종교적 시험을 확립했습니다.
But during the Revolution, Catholics, Jews, and Non-Conformists all rallied to the cause and fought valiantly for the American commonwealth-for John Winthrop's "city upon a hill." Afterwards, when the Constitution was ratified and then amended, the framers gave freedom for all religion, and from any established religion, the very first place in the Bill of Rights.
그러나 이런 혁명 중에 가톨릭교도들, 유대인들과 비국교도들은 John winthrop의 "언덕 위의 도시", 미국 연방을 위하여 용감히 싸웠고 사회 운동 단체를 조직했습니다.(소송을 위해 모였습니다.) 이후에 헌법이 비준되고 수정되자, 헌법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권리 장전의 가장 처음에 모든 종교에게, 어느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Indeed the framers themselves professed very different faiths: washington was an Episcopalian, Jefferson a deist, and Adams a Calvinist. And although he had earlier opposed toleration, John Adams later contributed to the building of Catholic churches, and so did George Washington. Thomas Jefferson said his proudest achievement was not the presidency, or the writing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but drafting the Virginia Statute of Religious Freedom. He stated the vision of the first Americans and the First Amendment very clearly: "The God who gave us life gave us liberty at the same time."
실로 헌법고안자들은 매우 여러 가지의 신앙을 가진다고 공언했다. washington은 영국 성공회를, Jefferson은 자연신교를, Adams는 칼뱅 파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전에는 신교의 자유에 반대했을 지라도, John Adams는 이후에 가톨릭교회를 설립하는 데 공헌을 했으며 George washington도 그러했습니다. Thomas Jefferson은 그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대통령직을 한 것이나 미국 독립 선언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자유에 대한 버지니아 법령의 초안을 작성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초기 미국인들의 비전과 수정헌법 1조를 매우 명확히 진술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준 신은 그와 동시에 자유 또한 부여했다."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can sometimes be frustrating for women and men of religious faith. They may be tempted to misuse government in order to impose a value which they cannot persuade others to accept. But once we succumb to that temptation, we step onto a slippery slope where everyone's freedom is at risk. Those who favor censorship should recall that one of the first books ever burned was the first English translation of the Bible. As President Eisenhower warned in 1953, "Don't join the book burners... the right to say ideas, the right to record them, and the right to have them accessible to others is unquestioned-or this isn't America." And if that right is denied, at some future day the torch can be turned against any other book or any other belief. Let us never forget: Today's Moral Majority could become tomorrow's persecuted minority.
교회와 정부의 분리는 때때로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실망시키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없는 가치를 강요하기 위해 정부를 오용하는 유혹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굴복하면 모두의 자유가 위험에 처하는 파멸에 이르는 길(미끄러운 비탈길)로 발을 내딛게 됩니다. 검열을 선호하는 이들은 처음으로 불태워졌던 책이 최초의 영어 번역본 성경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isenhower 대통령이 1953년에 경고하기를, "서적을 태우는 이들에 가담하지 마십시오... 생각을 말하고, 그것들을 기록하고, 다른 이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할 권리는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일 그 권리가 부정된다면 미래의 어느 날에는 그 횃불이 다른 어떤 책이나 신념을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도덕적 다수는 내일의 박해받는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The danger is as great now as when the founders of the nation first saw it. In 1789, their fear was of factional strife among dozens of denominations. Today there are hundreds-and perhaps even thousands of faiths-and millions of Americans who are outside any fold. Pluralism obviously does not and cannot mean that all of them are right; but it does mean that there are areas where government cannot and would not decide what it is wrong to believe, to think, to read, and to do. As professor Larry Tribe, one of the nation's leading constitutional scholars has written, "Law in a non-theocratic state cannot measure religious truth, nor can the state impose it."
지금은 설립자들이 처음 인지한 때만큼이나 위험하다. 1789년에, 그들은 수많은 교파간의 교파 싸움을 우려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수백의, 아마 수천의 신앙과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은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있습니다. 다원주의는 분명히 모두가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믿고, 생각하고, 읽고, 행하기에 어떤 것이 옳지 않은지 정할 수 없으며 정하지도 않을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두적인 헌법 학자 중 한 명인 Larry tribe 교수는 이렇게 저술했습니다. "반 신정주의 국가의 법은 종교의 진실을 평가 할 수도 없고, 정부가 그것을 강요할 수도 없다."
The real transgression occurs when religion wants government to tell citizens how to live uniquely personal parts of their lives. The failure of Prohibition proves the futility of such an attempt when a majority or even a substantial minority happens to disagree. Some questions may be inherently individual ones, or people may be sharply divided about whether they are. In such cases, like Prohibition and abortion, the proper role of religion is to appeal to the conscience of the individual, not the coercive power of the state.
진정한 위반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삶의 개인적 부분을 특별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해주기를 원하게 될 때 일어납니다. 금주법의 실패는 다수나 상당수의 소수가 반대할 경우에 이러한 시도의 무용성을 증명합니다. 어떤 질문들은 본래부터 개인적인 것들이거나 사람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해 급격히 나누어질 지도 모릅니다. 금주법이나 낙태와 같은 경우에 종교의 적절한 역할은 정부의 강압적인 권력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입니다.
But there are other questions which are inherently public in nature, which we must decide together as a nation, and where religion and religious values can and should speak to our common conscience. The issue of nuclear war is a compelling example. It is a moral issue; it will be decided by government, not by each individual; and to give any effect to the moral values of their creed, people of faith must speak directly about public policy. The Catholic bishops and the Reverend Billy Graham have every right to stand for the nuclear freeze, and Dr. Falwell has every right to stand against it.
그러나 사실상 본래 대중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국민으로서, 종교와 종교적 가치가 우리의 보편적인 양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 함께 결정해야 합니다. 핵전쟁 문제는 주목할 만한 예입니다. 이것은 도덕적 문제이며 개인이 아니라 정부에 의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념의 도덕적 가치에 대해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신도들이 공공 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가톨릭의 주교들과 Billy Graham 목사는 핵무기 동결을 옹호할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Falwell 박사에게는 그에 맞설 권리가 있습니다.
There must be standards for the exercise of such leadership, so that the obligations of belief will not be debased into an opportunity for mere political advantage. But to take a stand at all when a question is both properly public and truly moral is to stand in a long and honored tradition. Many of the great evangelists of the 1800s were in the forefront of the abolitionist movement. In our own time, the Reverend William Sloane Coffin challenged the morality of the war in Vietnam. Pope John XXIII renewed the Gospel’s call to social justice. And Dr. Martin Luther King, Jr. who was the greatest prophet of this century, awakened our nation and its conscience to the evil of racial segregation.
그러한 신앙의 의무가 단순한 정치적 이점을 위한 기회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력의 행사에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의문이 충분히 대중적인 동시에 진실로 도덕적인 것일 때에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은 오래된 전통입니다. 1800년대의 위대한 전도사들은 폐지 운동의 선두에 서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Reverend william Sloane coffin 은 베트남 전쟁의 도덕성에 도전을 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성서의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를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현 세기의 위대한 선도자였던 Martin Luther King Jr. 박사는 우리의 국가와 양심에게 인종 차별의 사악함을 일깨웠습니다.
Their words have blessed our world. And who now wishes they had been silent? Who would bid Pope John Paul [II] to quiet his voice against the oppression in Eastern Europe, the violence in Central America, or the crying needs of the landless, the hungry, and those who are tortured in so many of the dark political prisons of our time?
그들의 말은 우리 세상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그들이 침묵하기를 누가 바라겠습니까? 누가 동유럽의 탄압과 중앙아메리카의 폭력과 토지가 없는 이들과 굶주린 이들, 어두운 이시대의 정치 감옥에서 고문당하는 이들의 긴급한 필요에 대항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목소리를 죽이고 있도록 명령하겠습니까?
President Kennedy, who said that “no religious body should seek to impose its will,” also urged religious leaders to state their views and give their commitment when the public debate involved ethical issues. In drawing the line between imposed will and essential witness, we keep church and state separate, and at the same time we recognize that the City of God should speak to the civic duties of men and women.
Kennedy 대통령은 "그 뜻을 강요하려 하는 종교 단체는 없다."라고 말했고, 또한 공개 토론회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다루면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관점을 진술하고 의무를 다하기를 주장했습니다. 강요된 의지와 필수적인 증언 간의 경계선을 그으면서 우리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 상태를 유지하고, 그와 동시에 신의 도시에서는 시민의 의무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There are four tests which draw that line and define the difference. First, we must respect the integrity of religion itself. People of conscience should be careful how they deal in the word of their Lord. In our own history, religion has been falsely invoked to sanction prejudice -- even slavery -- to condemn labor unions and public spending for the poor. I believe that the prophecy, "The poor you always have with you" is an indictment, not a commandment. And I respectfully suggest that God has taken no position on the Department of Education -- and that a balanced budget constitutional amendment is a matter of economic analysis, and not heavenly appeals.
구분선을 그리고 차이점을 정의하는 네 가지의 시험이 있습니다. 첫째는, 종교 그 자체의 고결함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상, 종교는 가난한 이를 위해 노동조합과 공공 지출을 비난하기 위해서 편견의 승인을 노예제도까지도 잘못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들과 함께 하리라" 라는 예견이 십계명의 하나가 아니라 비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신은 교육부에서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고 있으며 헌법의 균형 잡힌 예산 조항은 경제 분석의 문제이지 천국에 호소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Religious values cannot be excluded from every public issue; but not every public issue involves religious values. And how ironic it is when those very values are denied in the name of religion. For example, we are sometimes told that it is wrong to feed the hungry, but that mission is an explicit mandate given to us in the 25th chapter of Matthew.
모든 대중 문제로부터 종교의 가치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모든 대중 문제가 종교적 가치를 포함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가치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부정될 때는 얼마나 모순적입니까. 예를 들어, 우리는 가끔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말을 듣지만, 이것은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분명히 지시하고 있는 사명입니다.
Second, we must respect the independent judgments of conscience. Those who proclaim moral and religious values can offer counsel, but they should not casually treat a position on a public issue as a test of fealty to faith. Just as I disagree with the Catholic bishops on tuition tax credits -- which I oppose -- so other Catholics can and do disagree with the hierarchy, on the basis of honest conviction, on the question of the nuclear freeze.
둘째로, 우리는 양심의 독립적인 판단을 존중해야 합니다. 도덕적이며 종교적인 가치를 선언하는 이들은 충고를 할 수는 있지만 대중 문제에 관한 자세를 신앙에 대한 충성을 시험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제가 등록금 세금 공제에 관해 가톨릭 주교와 의견을 달리 하는 것처럼 다른 가톨릭 신자들도 핵동결 문제에 대해 정직한 신념을 근거로 지배 계층에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Thus, the controversy about the Moral Majority arises not only from its views, but from its name -- which, in the minds of many, seems to imply that only one set of public policies is moral and only one majority can possibly be right. Similarly, people are and should be perplexed when the religious lobbying group Christian Voice publishes a morality index of congressional voting records, which judges the morality of senators by their attitude toward Zimbabwe and Taiwan.
그러므로 도덕적 다수파에 대한 반론은 관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이름에 대해서도 나옵니다, 즉, 여러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저 이름은 오직 하나의 공공 정책만이 도덕적이고 오직 하나의 큰 집단만이 옳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비슷하게, 사람들은 종교 교섭 단체인 크리스찬 보이스가 의회의 투표 기록의 도덕성 지수를, 짐바브웨와 타이완에 대한 태도로써 상원의원들의 도덕성을 평가한 것인데, 출판했을 때 당혹해 했습니다.
Let me offer another illustration. Dr. Falwell has written -- and I quote: “To stand against Israel is to stand against God.” Now there is no one in the Senate who has stood more firmly for Israel than I have. Yet, I do not doubt the faith of those on the other side. Their error is not one of religion, but of policy. And I hope to be able to persuade them that -- that they are wrong in terms of both America’s interest and the justice of Israel’s cause.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Falwell 박사가 저술한 것을 인용하자면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것은 신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제 상원에는 저보다 더 이스라엘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신앙을 다른 식으로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잘못은 종교가 아니라 정책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미국의 흥미와 이스라엘이 가진 동기의 정당성 두가지 점에서 모두 그들이 틀렸다고 설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Respect for conscience is most in jeopardy, and the harmony of our diverse society is most at risk, when we re-establish, directly or indirectly, a religious test for public office. That relic of the colonial era, which is specifically prohibited in the Constitution, has reappeared in recent years. After the last election, the Reverend James Robison -- Robison warned President Reagan no to surround himself, as president before him had, “with the counsel of the ungodly.” I utterly reject any such standard for any position anywhere in public service. Two centuries ago, the victims were Catholics and Jews. In the 1980s the victims could be atheists; in some other day or decade, they could be the members of the Thomas Road Baptist Church. Indeed, in 1976 I regarded it as unworthy and un-American when some people said or hinted that Jimmy Carter should not be president because he was a born again Christian. We must never judge the fitness of individuals to govern on the bas[is] of where they worship, whether they follow Christ or Moses, whether they are called “born again” or “ungodly.” Where it is right to apply moral values to public life, let all of us avoid the temptation to be self-righteous and absolutely certain of ourselves. And if that temptation ever comes, let us recall Winston Churchill’s humbling description of an intolerant and inflexible colleague: “There but for the grace of God goes God.”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관공서를 위한 종교 시험을 다시 확립하게 된다면 양심에 대한 존중이 가장 위험에 처하게 되며 우리의 다양한 사회의 조화가 가장 위험한 상태에 놓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유물은 헌법에서 특별히 금지되어 있으며 최근에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선거이후 James Robison목사는 Reagan 대통령에게 이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주변을 ‘신을 섬기지 않는 조언자’들로 에워싸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저는 공무원의 어떤 곳 어떤 직책이든 그런 기준에 대해서는 완전히 거부합니다. 2세기 전에, 피해자들은 가톨릭 신자들과 유대인들이었습니다. 1980년대의 피해자들은 무신론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후일 혹은 몇 십 년 후에, 그들은 토마스 로드 침례교회의 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1976년에 어떤 사람들이 Jimmy Carter가 기독교인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거나 암시할 때 무가치하고 비미국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예배 보는 장소나 그리스도를 따르는지, 모세를 따르는지, 혹은 “거듭 태어났는지” 아니면, “신을 섬기지 않는지”를 근거로 공직에 대한 개인의 적합성을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도덕적 가치를 공적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곳에서 우리 모두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거나 절대적으로 자신을 확신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만약 그런 유혹이 온다면 편협하고 완고한 동료에 대한 윈스톤 처칠의 겸손한 보사를 기억합시다. “신의 우아함을 제외하고, 신에게 간다”(???)
Third, in applying religious values, we must respect the integrity of public debate. In that debate, faith is no substitute for facts. Critics may oppose the nuclear freeze for what they regard as moral reasons. They have every right to argue that any negotiation with the Soviets is wrong, or that any accommodation with them sanctions their crimes, or that no agreement can be good enough and therefore all agreements only increase the chance of war. I do not believe that, but it surely does not violate the standard of fair public debate to say it. What does violate that standard, what the opponents of the nuclear freeze have no right to do, is to assume that they are infallible, and so any argument against the freeze will do, whether it is false or true.
세 번째, 종교적 가치를 적용할 때, 우리는 반드시 공개 토론의 진실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토론에서, 신앙은 진실의 대체물이 아닙니다. 비평가들은 핵 동결에 대해 자신들이 도덕적 근거라고 여기는 것을 이유로 반대를 할 것입니다. 그들은 논쟁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소비에트와 하는 어떤 협상도 틀렸다고 할 수도 있고, 그들에 관해 수용하는 어떤 것이든 범죄를 승인하는 것이라고 논쟁할 수도 있고, 어떤 합의도 충분히 좋을 수는 없으므로 모든 합의가 전쟁의 가능성을 증가시킬 뿐이라고 논쟁할 수도 있다. 저는 이를 믿지 않습니다만 이것을 언급하기 위한 공정한 공개 토론의 기준을 위반하지는 않습니다. 이 기준을 침해하는 것, 핵동결에 반대하는 이들은 권한이 없다는 것은 자신들이 절대 틀림이 없고, 그래서 핵동결에 반대하는 어떠한 주장도 틀리건 맞건 간에, 해도 된다고 가정하는 일입니다.
The nuclear freeze proposal is not unilateral, but bilateral -- with equal restraints on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The nuclear freeze does not require that we trust the Russians, but demands full and effective verification. The nuclear freeze does not concede a Soviet lead in nuclear weapons, but recognizes that human beings in each great power already have in their fallible hands the overwhelming capacity to remake into a pile of radioactive rubble the earth which God has made.
핵 동결 제안은 미국과 소련에 동등한 규제를 포함한 일방적이 아닌 쌍방의 제안입니다. 핵 동결은 우리가 러시아인을 믿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효과적인 검증을 요구합니다. 핵 동결은 핵무기에서 소비에트의 선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의 인간들이 하느님이 만든 지구를 방사능에 오염된 폐허더미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압도적 능력을 오류에 빠지기 쉬운 양손 안에 이미 넣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There is no morality -- There is no morality in the mushroom cloud. The black rain of nuclear ashes will fall alike on the just and the unjust. And then it will be too late to wish that we had done the real work of this atomic age -- which is to seek a world that is neither red nor dead.
도덕성은 없습니다. (핵폭발 후의) 버섯구름에는 도덕성이란 없습니다. 핵먼지의 검은 비가 정의와 부정의 위에 동등하게 내릴 것입니다. 그 후에는 이런 원자력 시대의 진정한 과제인 붉게 물들지도, 죽지도 않는 세상을 찾아내는 일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늦은 일이 될 것입니다.
I am perfectly prepared to debate the nuclear freeze on policy grounds, or moral ones. But we should not be forced to discuss phantom issues or false charges. They only deflect us form the urgent task of deciding how best to prevent a planet divided from becoming a planet destroyed.
저는 정치 혹은 도덕적 배경에서 핵 동결을 논쟁할 준비를 완벽히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비난이나 상상의 문제들은 토론하도록 강요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분리된 행성이 파괴된 행성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결정하는 급박한 임무로부터 우리를 비껴나게 할 뿐입니다.
And it does not advance the debate to contend that the arms race is more divine punishment than human problem, or that in any event, the final days are near. As Pope John said two decades ago, at the opening of the Second Vatican Council: “We must beware of those who burn with zeal, but are not endowed with much sense... we must disagree with the prophets of doom, who are always forecasting disasters, as though the end of the earth was at hand.” The message which echoes across the years is very clear: The earth is still here; and if we wish to keep it, a prophecy of doom is no alternative to a policy of arms control.
그리고 이것은 무기 경쟁이 인간의 무제보다는 더 성스러운 처벌이라고 주장하거나, 어떤 면에서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고 주장하는 논쟁을 진전시키지 않습니다. 교황 요한이 20년 전에 제2차 바티칸 의회의 시작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열정에 불타지만 많은 감각을 부여받지 못한 이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의 최후가 가까이에 있을 지라도 항상 재해를 예보하는 파멸의 예언자에게 동의하지 않아야 합니다." 몇 년간 메아리치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다. 지구는 여전히 여기 있고 만일 지키고 싶다면 파멸의 예언은 무기 통제 정책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Fourth, and finally, we must respect the motives of those who exercise their right to disagree. We sorely test our ability to live together if we readily question each other’s integrity. It may be harder to restrain our feelings when moral principles are at stake, for they go to the deepest wellsprings of our being. But the more our feelings diverge, the more deeply felt they are, the greater is our obligation to grant the sincerity and essential decency of our fellow citizens on the other side. Those who favor E.R.A [Equal Rights Amendment] are not “antifamily” or “blasphemers.” And their purpose is not “an attack on the Bible.” Rather, we believe this is the best way to fix in our national firmament the ideal that not only all men, but all people are created equal. Indeed, my mother, who strongly favors E.R.A., would be surprised to hear that she is anti-family. For my part, I think of the amendment’s opponents as wrong on the issue, but not as lacking in moral character.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의견 불일치의 권리를 행사하는 이들의 동기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진정성에 선뜻 의문을 가진다면 우리는 단지 함께 살아갈 능력을 실험해 볼 뿐입니다. 도덕적 원칙이 위태로운 상태라면 우리의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이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원천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더욱 다양해질수록, 더욱 깊을수록, 다른 편에선 우리 동료 시민들에게 성실성과 필수적인 존엄성을 인정할 의무가 더욱 커집니다. 평등권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안티패밀리" 나 "모독자"가 아닙니다. 그들의 목적은 "성서에 대한 공격"이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는 이것이 모든 남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이상을 우리 국가 상공에 정착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저의 어머니는 평등권의 열렬한 선호자이시지만, 안티 패밀리라는 말을 들으시면 놀라실 것입니다. 저로서는 이 조항의 반대자들은 쟁점이 다르다고 여기지만,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I could multiply the instances of name-calling, sometimes on both sides. Dr. Falwell is not a “warmonger.” And “liberal clergymen” are not, as the Moral Majority suggested in a recent letter, equivalent to “Soviet sympathizers.” The critics of official prayer in public schools are not “Pharisees”; many of them are both civil libertarians and believers, who think that families should pray more at home with their children, and attend church and synagogue more faithfully. And people are not sexist because they stand against abortion, and they are not murderers because they believe in free choice. Nor does it help anyone -- Nor does it help anyone’s cause to shout such epithets, or to try and shout a speaker down -- which is what happened last April when Dr. Falwell was hissed and heckled at Harvard. So I am doubly grateful for your courtesy here this evening. That was not Harvard’s finest hour, but I am happy to say that the loudest applause from the Harvard audience came in defense of Dr. Falwell’s right to speak.
저는 욕설의 예를 때때로 양 측에서 확대시킬 수 있습니다. Falwell 박사는 "전쟁광"이 아닙니다. 그리고 "관대한 성직자"들은 도덕적 다수가 최근에 제기한 것처럼 "소련의 동조자"와 같지 않습니다. 공립학교의 공식 기도문을 비판하는 이들은 "형식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유론자이며 신자이기도 하며 가족들은 아이들과 집에서 좀 더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회와 회당(유대교회)에 더욱 충실하게 참석합니다. 그리고 낙태에 반대하므로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며 자유로운 선택을 믿는다고 살인자도 아닙니다.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모멸적인 어구를 소리치거나 지난 4월 Falwell 박사가 하버드에서 꾸중듣고 야유받았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소리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동기를 돕지 못한다. 그러므로 저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의 정중함에 두 배로 감사드립니다. 그것은 하버드의 최고의 시기가 아니었지만, 저는 하버드 청중들로부터의 큰 박수갈채는 Falwell 박사의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In short, I hope for an America where neither "fundamentalist" nor "humanist" will be a dirty word, but a fair description of the different ways in which people of goodwill look at life and into their own souls. I hope for an America where no president, no public official, no individual will ever be deemed a greater or lesser American because of religious doubt -- or religious belief.
말하자면, 저는 "원리주의자"나 "인본주의자"가 추잡한 단어가 되지 않고,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 삶과 자신의 영혼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공정한 표현이 되는 미국을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대통령이나, 공무원도 없고, 어떤 개인이 종교적인 회의, 혹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보다 크거나 작은 미국인으로 생각되지 않는 미국이기를 희망합니다.
I hope for an America where the power of faith will always burn brightly, but where no modern Inquisition of any kind will ever light the fires of fear, coercion, or angry division.
저는 신앙의 힘이 항상 밝게 빛나지만 어떤 종류의 현대적 종교재판도 두려움과 강압, 분노의 분열에 불을 붙이지 않는 미국을 바랍니다.
I hope for an America where we can all contend freely and vigorously, but where we will treasure and guard those standards of civility which alone make this nation safe for both democracy and diversity.
자유롭고 활기차게 주장할 수 있지만, 이 나라를 민주주의와 다양성의 양 측에서 안전하게 해주는 시민 의식의 기준을 지키며 소중히 여기는 미국을 바랍니다.
Twenty years ago this fall, in New York City, President Kennedy met for the last time with a Protestant assembly. The atmosphere had been transformed since his earlier address during the 1960 campaign to the Houston Ministerial Association. He had spoken there to allay suspicions about his Catholicism, and to answer those who claimed that on the day of his baptism, he was somehow disqualified from becoming President. His speech in Houston and then his election drove that prejudice from the center of our national life. Now, three years later, in November of 1963, he was appearing before the Protestant Council of New York City to reaffirm what he regarded as some fundamental truths. On that occasion, John Kennedy said: “The family of man is not limited to a single race or religion, to a single city, or country...the family of man is nearly 3 billion strong. Most of its members are not white and most of them are not Christian.” And as President Kennedy reflected on that reality, he restated an ideal for which he had lived his life -- that “the members of this family should be at peace with one another.”
20년 전 가을, 뉴욕에서 Kennedy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개신교 집회와 만났습니다. 분위기는 그의 1960년 휴스턴 각료회의 협회의 캠페인 기간 동안 변했습니다. 그는 카톨릭 주의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고 지난 날 그의 세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대답을 하기 위해 연설을 했고 왠일인지 대통령이 될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휴스턴에서의 연설 이후에 그의 선거는 우리 생활의 중심에서 이러한 편견을 몰아붙였습니다. 3년 후인 1963년 11월에 그는 근본적인 진실로 여기는 것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뉴욕시의 개신교 협의회 이전에 나타났습니다. 그 상황에서, John Kennedy는 말했습니다. "사람의 가족은 하나의 인종, 종교, 도시 또는 국가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가족은 30억에 육박합니다. 대부분은 백인이 아니며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Kennedy 대통령은 현실을 되새기면서 그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추구하던 이상을 다시 말했습니다. "이 가족의 일원이 서로 평화로운 것"이라고 말입니다.
That ideal shines across all the generations of our history and all the ages of our faith, carrying with it the most ancient dream. For as the Apostle Paul wrote long ago in Romans: “If it be possible, as much as it lieth in you, live peaceably with all men.”
이 이상은 가장 오래된 꿈과 함께 우리 역사상의 모든 세대와 신앙의 모든 시대를 비춥니다. Apostle Paul 이 오래전 로마에서 썼던 것처럼 말입니다. "가능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살아가라.
I believe it is possible; the choice lies within us; as fellow citizens, let us live peaceable with each other; as fellow human beings, let us strive to live peaceably with men and women everywhere. Let that be our purpose and our prayer, yours and mine -- for ourselves, for our country, and for all the world.
저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놓여 있습니다. 시민으로서, 서로 평화롭게 살아갑시다. 인간으로서, 어느 곳에서나 평화롭게 살아가려 합시다. 이것들이 저와 여러분의, 우리들의, 우리 국가의, 전 세계의 목적이자 기도하는 것이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