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가 자신의 게놈지도를 분석해 본 뒤 쓴 글입니다.
원문 http://www.nytimes.com/2009/01/11/magazine/11Genome-t.html?pagewanted=all&_r=1&
Unit 18. My Genome, My self By steven pinker
One of the perks of being a psychologist is access to tools that allow you to carry out the injunction to know thyself. I have been tested for vocational interest (closest match: psychologist), intelligence(above average), personality (open, conscientious, agreeable, average in extraversion, not too neurotic) and political orientation (neither leftist nor rightist, more libertarian than authoritarian). I have M.R.I. pictures of my brain (no obvious holes or bulges) and soon will undergo the ultimate test of marital love: my brain will be scanned while my wife's name is subliminally flashed before my eyes.
심리학자가 된 특전 중의 하나는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도구에 대한 접근이다. 나는 직업 흥미(근접: 심리학자), 지능(평균 이상), 성격(개방적이며, 성실하고 쾌활하며 평균 정도의 외향성을 가졌고 신경이 과민하지 않음)과 정치적 태도 (급진주의도, 보수주의도 아니며 권위주의적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임)에 관한 검사를 받았다. 뇌 M.R.I 사진을 찍고(눈에 띄는 구멍이나 혹은 없었다) 부부간의 사랑을 시험하는 최종 검사를 받을 것이다. 아내의 이름이 무의식중에 아내의 이름을 신호로 보내는 동안 내 뇌가 스캔될 것이다.
Last fall I submitted to the latest high-tech way to bare your soul. I had my genome sequenced and am allowing it to be posted on the Internet, along with my medical history. The opportunity arose when the biologist George Church sought 10 volunteers to kick off his audacious Personal Genome Project. The P.G.P has created a public database that will contain the genomes and traits of 100,000 people. Tapping the magic of crowd sourcing that gave us Wikipedia and Google rankings, the project seeks to engage geneticists in a worldwide effort to sift through the genetic and environmental predictors of medical, physical and behavioral traits.
지난 가을 나는 당신의 영혼을 드러내는 최신의 첨단 기술 방식을 제안했다. 나는 내 게놈의 배열 순서를 밝혔고 내 병력과 함께 인터넷에 게시하려고 한다. 이 기회는 생물학자인 George Church가 대담한 개인 게놈 프로젝트를 개시할 10명의 지원자를 찾으면서 시작되었다. 개인 게놈 프로젝트는 100,000명의 사람들의 특성과 게놈을 포함할 공공 데이터베이스를 창조했다. 우리에게 위키피디아나 구글 랭킹을 제공하는 크라우드 소싱(대중 외부 자원 활용)의 놀라움을 이용하면서, 그 프로젝트는 의료, 신체와 행동 특성의 유전적, 환경적 예측 변수를 걸러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유전학자들을 고용하려 애썼다.
The Personal Genome Project is an initiative in basic research, not personal discovery. Yet the technological advance making it possible-the plunging cost of genome sequencing-will soon give people an unprecedented opportunity to contemplate their own biological and even psychological makeups. We have entered the era of consumer genetics. At one end of the price range you can get a complete sequence and analysis of your genome from Knome (often pronounced "know me") for $99,500. At the other you can get a sample of traits, disease risks and ancestry data from 23andMe for $399. The science journal Nature listed "Personal Genomics Goes Mainstream" as a top news story of 2008.
개인 게놈 프로젝트는 개인적인 발견이 아닌 기본 연구에 근거한 계획이다. 그러나 게놈 배열 순서를 밝히는 비용을 부담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 기술 진보는 머지않아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물학적인 구성, 심지어는 신체 구성까지도 고려할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소비자 유전학의 시대에 들어섰다. $99,500에 Knome("Know me"로 발음되는)에서 완전한 유전자 배열과 분석을 얻을 수 있다. 23andMe에서는 $399에 특성과 질병의 위험, 조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과학 잡지 Nature지에는 2008년 화제의 뉴스 기사로 "개인 게놈학이 주류가 되고 있다"를 게재했다.
Like the early days of the Internet, the dawn of personal genomics promises benefits and pitfalls that no one can foresee. It could usher in an era of personalized medicine, in which drug regimens are customized for a patient's biochemistry rather than juggled through trial and error, and screening and prevention measures are aimed at those who are most at risk. It opens up a niche for bottom-feeding companies to terrify hypochondriacs by turning dubious probabilities into Genes of Doom. Depending on who has access to the information, personal genomics could bring about national health insurance, leapfrogging decades of debate, because piecemeal insurance is not viable in a world in which insurers can cherry-pick the most risk-free customers, or in which at-risk customers can load up on lavish insurance. The pitfalls of personal genomics have already made it a subject of government attention. Last year President Bush signed the Genetic Information Nondiscrimination Act, outlawing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nd health insurance based on genetic data. And the states of California and New York took action against the direct-to-consumer companies, arguing that what they provide are medical tests and thus can be ordered only by a doctor.
인터넷의 초기와 같이, 개인 게놈의 시작은 이익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약속했다. 이것은 약물 복용이 시행착오를 통해 조직되기보다 환자의 생화학에 의해 맞춰지며, 검사와 예방 조치가 가장 위험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화된 약물의 시대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심기증 환자들에게 불확실한 확률을 죽음의 유전자로 바꿔 겁을 주는 회사들에게 적절한 자리를 열어 주었다. 누가 정보에 접근했는지에 따라, 개인 게놈학은 국민 건강 보험이나 시대를 뛰어넘는 논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단편적인 보험은 보험 회사에서 가장 위험에서 벗어난 고객을 선별하거나 위험에 처한 고객들이 후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실행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 게놈학의 위험은 이것을 이미 국가의 관심사로 만들었다. 작년, Bush 대통령이 유전자 정보 비차별 운동을 승인하고 유전 정보에 근거한 고용과 건강 보험 상의 차별을 법으로 금지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와 뉴욕 주에서는 자신들이 의료 검사를 제공하므로 의사만 주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비자 직배 회사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
With the genome no less than with the Internet, information wants to be free, and I doubt that paternalistic measures can stifle the industry for long (but then, I have a libertarian temperament). For better or for worse, people will want to know about their genomes. The human mind is prone to essentialism - the intuition that living things house some hidden substance that gives them their form and determines their powers. Over the past century, this essence has become increasingly concrete. Growing out of the early, vague idea that traits are "in the blood," the essence became identified with the abstractions discovered by Gregor Mendel called genes, and then with the iconic double helix of DNA. But DNA has long been an invisible molecule accessible only to a white-coated priesthood. Today, for the price of a flat-screen TV, people can read their essence as a printout detailing their very own A's, C's, T's and G's.
인터넷 못지않게 게놈 역시, 정보는 자유로워지길 원하며, 가부장주의적인 조치들은 산업을 오랫동안 억누를 것을 믿지 않는다. 좋든 나쁘든, 사람들은 자신의 게놈에 대해 알고 싶어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본질주의 즉, 살아있는 것들은 그들에게 형태를 부여하며 그들의 능력을 결정하는 숨겨진 물질을 보관하고 있다는 직관을 가지기 쉽다. 지난 세기 동안, 이러한 본질은 점차 견고해졌다. 특성이 "혈액 속에 있다"는 초기의 모호한 생각이 사라지면서, 본질은 Gregor Mendel이발견한 유전자라는 추상적 개념과 DNA의 상징인 이중 나선을 통해 확인되었다. 그러나 DNA는 오랫동안 백의를 입은 사제만이 접근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분자일 뿐이었다. 오늘날에는 평면 TV 값으로 A, C, T와 G의 본질을 자세한 인쇄물로 읽을 수 있다.
A firsthand familiarity with the code of life is bound to confront us with the emotional, moral and political baggage associated with the idea of our essential nature. People have long been familiar with tests for heritable diseases, and the use of genetics to trace ancestry-the new "Roots"- is becoming familiar as well. But we are only beginning to recognize that our genome also contains information about our temperaments and abilities. Affordable genotyping may offer new kinds of answers to the question "Who am I?"-to ruminations about our ancestry, our vurnerabilities, our character and our choices in life.
생명의 암호에 대한 익숙함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본성에 대한 관념과 관련한 감정, 도덕, 정치적 짐과 직면하게 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유전적 질병에 대한 검사에 익숙했으며, 새로운 "뿌리"인 조상을 추적하는 데 유전학을 이용하는 일 또한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특성과 능력에 대한 정보를 우리의 게놈이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입수할 수 있는 유전자형은 우리의 조상에서부터 취약점, 성격과 인생에서의 선택까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새로운 대답을 제공할 것이다.
Over the years I have come to appreciate how elusive the answers to those questions can be. During my first book tour 15 years ago, an interviewer noted that the paleontologist Stephen Jay Gould had dedicated his first book to his father, who took him to see the dinosaurs when he was 5. What was the event that made me become a cognitive psychologist who studies language? I was dumbstruck. The only thing that came to mind was that the human mind is uniquely interesting and that as soon as I learned you could study it for a living, I knew that that was what I wanted to do. but that response would not just have been charmless; it would also have filed to answer the question. Millions of people are exposed to cognitive psychology in college but have no interest in making a career of it. What made it so attractive to me?
지난 세월 동안 나는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인식하게 되었다. 15년 전 첫 번째 저서 방문동안 한 기자가 고생물학자인 Stephen Jay Gould가 그의 아버지의 첫 번째 책에 공헌을 했으며 그의 아버지를 그가 5살 때 공룡을 보러 데러갔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내가 언어를 공부하는 인지 심리학자가 되도록 만든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놀라웠다. 내 마음속에 떠오른 것은 오직 인간의 마음이 독특하게 흥미로우며 그것을 공부하자마자 직업으로 삼을 수 있으며 내가 원하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반응은 매력이 없지는 않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인지 심리학을 접하지만 직업으로 삼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나에게는 무엇이 그렇게도 매력적이었을까?
As I stared blankly, the interviewer suggested that perhaps it was because I grew up in Quebec in the 1970s when language, our pre-eminent cognitive capacity, figured so prominently in debates about the future of the province. I quickly agreed-and silently vowed to come up with something better for the next time. Now I say that my formative years were a time of raging debates about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human nature, or that my parents subscribed to a Time-Life series of science books, and my eye was caught by the one called "The Mind," or that one day a friend took me to hear a lecture by the great Canadian psychologist D.O.Hebb, and I was hooked. But it is all humbug. The very fact that I had to think so hard brought home what scholars of autobiography and memoir have long recognized. None of us know what made us what we are, and when we have to say something, we make up a good story.
내가 멍하게 바라보자, 기자는 아마도 그것은 내가 그 지방의 미래에 대한 논쟁을 통해 출중한 인지 능력인 언어가 형성되었던 1970년대의 퀘벡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재빠르게 동의했으며 다음번에는 좀 더 나은 것을 찾아내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이제 나는 나의 형성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치적 영향에 대한 열띤 토론의 시간이었다거나, 나의 부모님이 과학 책들의 생명 시리즈인 Time을 구독했다거나, 내 눈이 "정신"이라는 것에 사로잡혔다거나 한 친구가 위대한 캐나다의 심리학자 D.O.Hebb의 강의에 데려가서 그것에 끌리고 말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사기일 뿐이다. 내가 열심히 생각해야 했던 진실은 학자들의 전기나 회고록이 오랫동안 인식되는 것을 자각시켰다. 아무도 우리를 만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무언가를 이야기 해야만 할 때, 우리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낸다.
An obvious candidate for the real answer is that we are shaped by our genes in ways that none of us can directly know. Of course genes can't pull the levers of our behavior directly. But they affect the wiring and workings of the brain, and the brain is the seat of our drives, temperaments and patterns of thought. Each of us is dealt a unique hand of tastes and aptitudes, like curiosity, ambition, empathy, a thirst for novelty or for security, a comport level with the social or the mechanical or the abstract. some opportunities we come across click with our constitutions and set us along a path in life. This hardly seems radical-any parent of more than one child will tell you that babies come into the world with distinct personalities. But what can anyone say about how the baby got to be that way? Until recently, the only portents on offer were traits that ran in the family, and even they conflated genetic tendencies with family traditions. Now, at least in theory, personal genomics can offer a more precise explanation. We might be able to identify the actual genes that incline a person to being nasty or nice, an egghead or a doer, a sad sack or a blithe spirit.
확실한 대답의 후보로는 우리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유전자에 의해 형성 된다는 것이다. 물론 유전자는 행동의 레버를 직접 당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뇌의 구조와 작용을 도우며, 뇌는 생각 방식이나 기질이 생겨나는 곳이다. 개인은 호기심, 야망, 공감, 새로움과 안전, 사회 혹은 기계나 관념 수준의 안락에 대한 갈망과 같은 독특한 소질을 가진다. 우연한 기회로 우리의 구조는 명확해 졌으며 인생의 길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놀랍지 않다. 자녀가 한 명 이상인 부모들은 누구라도 아이들은 각자의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아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말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제공된 유일한 징조는 집안 내력이며, 심지어는 유전적 기질을 가풍과 융합하는 특성뿐이다. 이제, 최소한 이론에서라도 개인 게놈 학은 더욱 정확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을 심술궂거나 상냥하게, 지식인이나 행동가 또는 요령이 없는 사람이나 밝은 기질이 되도록 하는 실질적인 유전자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Looking to the genome for the nature of the person is far from innocuous. In the 20th century, many intellectuals embraced the idea that babies are blank slates that are inscribed by parents and society. It allowed them to distance themselves from toxic doctrines like that of a superior race, the eugenic breeding of a better species or a genetic version of the Twinkie Defense in which individuals or society could evade responsibility by saying that it's all in the genes. When it came to human behavior, the attitude toward genetics was "Don't go there." Those who did go there found themselves picketed, tarred as Nazis and genetic determinists or in the case of the biologist E. O. Wilson, doused with a pitcher of ice water at a scientific conference.
개인의 특성을 위해 게놈을 살피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20세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아이들이 부모와 사회에 의해 써지는 백지 상태와 같다는 생각을 수용했다. 이는 그들이 더 나은 종족의 우생학적 번식이나 개인이나 사회가 모두 유전자의 탓이라고 말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트윙키 디펜스의 유전학적 버전, 우월 인종주의와 같은 유해한 원칙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인간의 행동에 관해서, 유전학을 향한 태도는 "그쪽으로 가지 마라"였다. 그 곳에 간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나치당원이나 유전 결정론자로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자신이나 과학 협회에서 얼음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쓴 생물학자 E. O. Wilson의 사례였다.
Today, as the lessons of history have become clearer, the taboo is fading. Though the 20th century saw horrific genocides inspired by Nazi pseudoscience about genetics and race, it also saw horrific genocides inspired by Marxist pseudoscience about the malleability of human nature. The real threat to humanity comes from totalizing ideologies and the denial of human rights, rather than a curiosity about nature and nurture. Today it is the humane democracies of Scandinavia that are hotbeds of research in behavioral genetics, and two of the groups who were historically most victimized by racial pseudoscience-Jews and African-Americans-are among the most avid consumers of information about their genes.
오늘날에는 역사의 교훈이 더욱 명확해 지면서, 금기는 희미해지고 있다. 20세기에 나치의 사이비 과학에 의해 고취된 끔찍한 학살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인간 본성의 순응성에 관한 사이비 과학에 의한 집단 학살 또한 보였다. 인류에 대한 진정한 위협은 천성과 양육에 관한 호기심 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전체주의화와 인권의 부정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행동 유전학 연구의 온상이 된 것은 스칸디나비아의 인도적 민주주의이며, 역사상 인종 사이비 과학에 의해 가장 피해를 본 유대인과 미국 흑인 두 집단은 자신의 유전 정보의 가장 열렬한 소비자 사이에 있다.
((미완성))